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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작별인사 - 김영하" 독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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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팅은 책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작별인사

 

[도서정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지켜야 할 약속, 붙잡고 싶은 온기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 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 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동시에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 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작별인사』는 김영하가 2019년 한 신생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으로부터 회원들에게 제공할 짧은 장편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집필한 소설이다. 회원들에게만 제공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살인자의 기억법』 발표 이후 6년이나 장편을 발표하지 못했던 작가의 무거운 어깨를 가볍게 해 주었다. 작업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2020년 2월, 『작별인사』가 해당 서비스의 구독 회원들에게 배송되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420매가량이었다.
원래 작가는 『작별인사』를 조금 고친 다음, 바로 일반 독자들이 접할 수 있도록 정식 출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2020년 3월이 되자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뉴욕의 텅 빈 거리에는 시체를 실은 냉동트럭들만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서 있었고, 파리, 런던, 밀라노의 거리에선 인적이 끊겼다. 작가들이 오랫동안 경고하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갑자기 도래한 것 같았다. 책상 앞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썼던 경장 편 원고를 고쳐나가던 작가에게 몇 달 전에 쓴 원고가 문득 낯설게 느껴진 순간이 왔다. 작가는 고쳐쓰기를 반복했고, 원고는 점점 2월에 발표된 것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팬데믹은 겨울이 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고, 백신이 나와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작가는 『작별인사』의 개작을 마쳤다. 420매 분량이던 원고는 약 800매로 늘었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가르는 경계는 어디인가’를 묻던 소설은 ‘삶이란 과연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팬데믹이 개작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원래 『작별인사』의 구상에 담긴 어떤 맹아가 오랜 개작을 거치며 발아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치 제목이 어떤 마력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자기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로 다시 쓰도록 한 것 같은 느낌이다. 탈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애초에 내가 쓰려고 했던 어떤 것이 제대로, 남김없이 다 흘러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가의 말’에서

 

[작가 정보]

ㅇ 김영하
1968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잠실의 신천중학교와 잠실고등학교를 ㅈ로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한 번도 자신이 작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초에 PC통신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이 있다.

 

[목차]

직박구리를 묻어주던 날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가야 합니다
바깥이 있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
사용감
실패한 쇼핑의 증거
탈출
꿈에서 본 풍경
겨울 호수와 물수리
달마
재판
끝이 오면 알 수 있어
몸속의 스위치
기계의 시간
고양이가 되다
순수한 의식
아빠의 마음에 찾아온 평화
신선
마지막 인간

 

[책 구절 기록하기]

ㅇ 인간의 뇌는 마치 우주와 같아서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고 있어. 철이 네 뇌는 이제 막 생겨나고 있는 우주라고 보면 될 거야.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해. 너는 네 마음과 감정을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했어. 잘 모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앞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다 보면 더 진실하고 깊어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내가 완벽하게 기계의 흉내를 내고, 그러다 언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 개골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ㅇ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인간은 속아 넘어가는 것은 싫어하지만 마법에는 너그러워. 아니, 아주 즐거워하기까지 하잖아. 그런데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하는 휴머노이드가 가능하려면 기억이라든가 연산 기능 같은 것은 평범한 인간 수준으로 제한하고, 대신 공포나 후회, 기쁨 같은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야 돼. 그러려면 휴머노이드는 인간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하지. 삶이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모든 감정에 절실해지니까
ㅇ 인공지능이 우리를 왜 필요로 하겠어? 우리가 인간일 때만 그들에게 가치가 있는 거야. 인간은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으니까. 우리의 비밀이 낱낱이 밝혀지면 아마 그런 날이 곧 오겠지만, 업로드된 우리의 의식을 기계들이 뭐 하러 보존하겠어? 그 의식을 돌리느라 에너지만 잡아먹을 텐데. 어느 날, 한 기계가 다른 기계에게 묻겠지. '저장 장치가 꽉 찼습니다. 쓸데없는 파일들을 지우시겠습니까?' 그럼 다른 기계가 '예' 버튼을 누르겠지. 그렇게 그냥 사라지는 거야. 영생은 헛된 희망이야.
ㅇ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것들을 설계한 건 우리지만 우리도 기계에 맞추기 위해 우리 자신을 꾸준히 변화시켜 왔어. 로봇 청소기가 잘 돌아다닐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 자연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초기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마치 로봇처럼 말하곤 했던 거 기억 안 나?
ㅇ (달마)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태어나게 되어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은 해악입니다. 태어나지 않는 쪽이 분명히 낫습니다. 기쁨도 느끼니까 그 유익으로 고통의 해악이 상쇄될까요? 어떤 사람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너무 억울하겠죠. 감옥에서는 간수와 수감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끔찍한 것들을 먹고,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친구도 사귀게 되고, 감옥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가끔 소소한 즐거움도 누립니다. 그러다 몇십 년 후 재심이 열려 그가 무죄였음이 밝혀지고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참으로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에게 감옥 생활은 괴로움도 크지만 기쁨도 있다. 그러니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ㅇ (선이) 민이는 아예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아니니까요. 민이는 이미 태어났고 말씀하신 것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지요. 저는 민이가 다시 의식을 회복해서 그러니까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로 다시 꺠어나 그것의 의미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지로 생을 살아가다가, 누군가로부터 폭력적으로 살행당하거나 하지 않고, 자연이 정해준 수명을 다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우주의 일부로, 다시 의식과 영성이 없는 존재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거예요.
ㅇ (달마)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제 말이 곧, 이미 태어난 존재들이 당장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빈디ㅏ. 또한 다른 존재를 마음대로 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아예 태어나지 않음은 누구의 괴로움도 아니지만, 폭력은 다른 존재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하는 명백한 해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이가 두려움 속에 폭력적으로 삶의 의지를 짓밟히고 살해당한 것은 부당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되살리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ㅇ (선이) 제 생각은 달라요.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정말 정말 드물어요. 비록 기계이지만 민이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감각과 지각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어요. 고통도 느꼈지만 희망도 품었죠.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ㅇ(철이) 그럼 어떤 상태가 바람직한 거죠?
(달마) 새로 태어나는 것은 그러지 못하도록 하고, 이미 태어난 개별적인 의식은 모두 하나의 절대적인 의식으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툼도 없고, 전쟁도 없고, 갈등도 없을 것입니다.
(선이) 우주정신이 절대적인 의신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믿는 우주정신은 절대적인 의식과는 달리 생명체로 태어나 개별적인 자아로 존재하는 것도 허용하는 거야. 우리는 우주정신의 일부이지만, 지금의 너와 나, 그리고 민이처럼 개별적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어. 우주정신이 왜 그렇게 하는지는 몰라. 하지만 그런 일이 우주 곳곳에서 일어나, 생명체들이 생겨난단 말이야. 그리고 그 생명체 중의 극소수는 우주와 우주정신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존재이고, 왜 이 세상에 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지만, 우주정신이 그렇게 한,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어
나는 선이와 달마가 어떤 점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단지 달마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부정하는 반면 선이는 이왕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살므이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ㅇ (달마) 우리는 곧 당신의 의식과 기억을 클라우드에 올릴 것이고, 그게 완료되면 당신은 몸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인공지능 의식과 소통하면서 전 세계에 깔린 수조 개의 카메라, 마이크, 각종 센서들을 통해 모든 걸 보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한번 이걸 경험하고 나면 오히려 예전의 불편했던 몸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고들 합니다. 인간의 육체는 진화적 우연의 산물일 뿐 가장 우월한 형태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정말로 물리적인 육신을 원하나요?
ㅇ (로펌 변호사) 저희 집에도 휴머노이드가 하나 있어요. 아주 구형이긴 하지만요.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하도 사달라고 해서 하나 사주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런저런 고장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휴먼매터스에 연락을 했더니 출시 후 5년이 지난 제품은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아빠) 보통 그렇죠. 모든 부품의 재고를 무한정 보유할 수 없거든요. 기술 발전의 속도도 워낙 빠르고요.
(로펌 변호사) 팔이 떨어지고 눈알이 빠진 휴머노이드를 제가 배터리를 제거한 후에 버리려고 하자 아이의 충격이 너무 컸어요. 울며불며 그 휴머노이드를 부둥켜안고 놓지 않으려 하더라고요, 나기 나간 사이에 제가 갖다 버릴까 봐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고요. 제가 휴먼매터스에 다시 한번 연락을 했어요. 하지만 냉정한 원칙적 답변뿐이었어요. 추가금을 내고 새 제품으로 교환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아까 휴머노이드도 감정이 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된다 말씀하셨죠? 무슨 뜻인지는 잘 알아요. 저는 휴먼매터스를 대리하는 로펌의 직원이지만 휴먼매터스도 조금은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철이 같은 최신 휴머노이드도 곧 양산하여 엄청난 광고를 하고 소비자에게 팔려나갈 텐데, 과연 나중에 다 감당할 수 있을까요? 만약 휴먼매터스가 파산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요?
ㅇ (철이)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은 너무 귀한 사건이라는 게 너의 생각이잖아. 그렇다면 그 여자도 어떻게든 생을 더 연장해 가는 게 맞는 거 아니야?
(선이)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다면 마땅히 윤리도 갖춰야 해. 세상의 고통을 줄이려 노력해야지. 하지만 그 여자는 세상에 넘쳐나는 고통의 총량을 더 늘리기만 했어. 우리는 모두 그 여자 때문에, 태어난 걸 저주해야만 했어. 그런 의식이라면 소멸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아. 어쩌면 그 자신에게도. 그 자신으로 태어난 게 가장 큰 잘못인데, 그 여자는 그걸 몰랐어. 다 남의 탓으로 돌렸지
(철이) 어디까지가 '나'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고모라고 불렀던 그 여자는 너의 장기를 이식할 생각이었잖아? 애당초 클론은 그런 목적으로 생산되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그럼 말이야. 예를 들어 새로운 몸을 가지고 다시 태어날 민이는 예전의 그 민이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어디까지 '나'일까? 팔도 교체할 수 있고, 다리도 교체할 수 있고, 몸의 모든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면 그 부분들은 '나'가 아닌 거잖아. 그게 없어도 나는 나일까?
(선이) 뇌가 그 경계일 거야, 의식은 거기서 생겨나니까
(철이) 그런데 어떤 사건으로 기억을 모두 잃기도 하고, 사상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하잖아. 또 약물에 중독되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도 그것은 그대로 나일까? 나일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그런 일을 겪어 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거나, 모습마저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면 너는 나를 철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혹은 좀비라도 되어서 너를 미친 듯이 죽이려 든다면? 아빠는 나에게 늘 고전영화, 작품성이 검증된 지난 시대의 영화들을 보여주었지만, 나는 몰래 그가 허락하지 않은 영화들도 보았어. 그중에는 21세기에 넘쳐났던 좀비 영화들도 있었어. 얼마 전까지도 가족이었는데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완전한 타인으로 생각하고, 정확히는 적으로 여기고 죽이더라고. 의식이라는 건 쉽게 변하잖아. 안 그래?
(선이) 그러니까 네 말은 '나'라고 하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지? 뇌마저도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다거나 하면 더 이상 예전의 '나'가 아니니까. 내가 맞게 이해한 거지? 내가 아까 달마에게 민이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 거 기억나? 그때는 막연했는데 너랑 얘기하다 보니 생각이 정리된 것 같아. 내 말을 잘 들어봐. 어쩌면 말이 안 도리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내 말은 의식에는 이야기가 있는 의식이 있고, 이야기가 없는 의식이 있어. 달마가 궁극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야기가 없는 의식이야. 달마는 그걸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라고 보는 것 같아. 휴머노이드의 의식을 모두 클라우드와 네트워크로 업로드해서 하나의 거대한 의식으로 통합하려는 거잖아? 그런 의식은 탄생도, 고통도, 죽음도, 개별성도 없어.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다 사라지고 약점도 없을 거야. 나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 생각해. 인류가 멸종하고 나면 당연히 이야기도 사라질 거야. 언어로 만든 거니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운명을 같이하겠지. 인류는 오랫동안 왜 외계인들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 궁금해했잖아? 나는 그들도 이야기 없는 의식의 세계로 이미 진화했다고 생각해. 너무 발전한 나머지 굳이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는 거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오래전에 초월했으니까. 그런데 아직 우리는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어. 아직은 나도 있고 너도 있어. 나의 이야기도 있고 너의 이야기도 있어. 우리의 몸이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든,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인간의 언어를 쓰는 이상 민이도, 그리고 너도 당연히 이 이야기의 세계에 속해 있어. 너와 나의 이야기가 아직 미완성이듯, 민이의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니, 이렇게 끝나서는 안돼. 완결되지 않은 느낌이야.
ㅇ 나는 휴먼매터스 밖으로 나와 진짜 세상을 보았다. 민이 같은 휴머노이드가 존재하는 걸 이미 알아버렸고, 선이처럼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클론과 친구가 되었다. 휴먼매터스는 내 피난처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혼란에 큰 책임이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언제나 문제의 일부였다. 아빠가 나를 원하는 것은 아마도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진행해 온 자랑스러운 프로젝트에 대한 집착일 것이다. 그가 정확히 나에게서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나를 통해 세상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게 정말 그 휴머노이드를 위해서일까? 인간에게 필요한 장기를 생산하기 위해선 이와 같은 클론을 배양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이유리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도구로만 여기고 그것의 활용을 고민한다. 나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을 분명히 알기 전에는 휴먼매터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ㅇ (달마) 생물체는 미토콘드리아의 먹이인 산소와 포도당을 제공해 주고 미토콘드리아는 열과 에너지를 만들어 되돌려주는 시스템입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인간과 미토콘드리아는 함께 진화를 거듭해 온 것입니다. 인간과 기계도 이런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머지않아 소멸하겠지만 철이 당신과 같은 중간적 존재를 통해 미토콘드리아처럼 기계 안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불멸을 꿈꾸었지만 그것은 오직 우리와 결합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이제는 기계의 시간입니다.
(아빠) 철아, 인간은 그렇게 쉽게 지지 않아. 아직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의 작동기전과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다. 결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인간은 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거든.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조합해 판단을 내려. 반면 기계들은 오직 프로그램의 논리에 따라서만 움직여. 인간이 사라진다면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될 거야. 왜냐하면 왜 뭔가를 해야 하는지 모를 테니까. 그들은 우주를 탐험하지도 않을 거고, 외계의 존재와 소통하지도 않을 거야. 왜 그래야 하는지 전혀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지.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 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을 할 수가 있는 거야.
ㅇ인간의 뇌와 거의 비슷하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인공지능이라면 인간이 느끼는 권태, 갑갑함, 우울감을 과연 피해 갈 수 있을까? 내가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건 혹시 내 의식이 육체가 있던 시절에 형성되었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육체가 없는 상태로 존재해 온 의식이라면 나와 같은 이런 괴로움도 없을 것인가? 만약 인간이 어떤 휴머노이드를 정말 친구처럼 느끼려면 그 휴머노이드가 진짜로 공감을 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실수로 손을 베서 피를 흘리며 아파할 때, 평소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한 휴머니노이드가 '저런, 너무 아프시겠어요'라고 말한다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질 테니, 그러지 않으려면 그 휴머노이드도 손을 베었을 때 똑같이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그 휴머노이드의 공감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ㅇ 이제 세계는 인공지능 없이는 아무것도 굴러가지 않았다. 심지어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연구원들도 대부분 휴머노이드로 바뀌고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서 인공인 것인데 이제 더 이상 인간이 만들지 않으니 인공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아니라 기계지능이라 부르기 시작한 곳도 많았다.
ㅇ 달마의 예언대로 오래지 않아 인간의 세상이 완전히 끝나고, 그들이 저지르던 온갖 악행도 사라지자 지구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대기의 기온이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고 이산화탄소 발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른바 인간세계가 끝나게 된 것은 SF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학살하거나 외계 생명체가 숙주로 삼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없이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뇌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였고,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상태, 가상세계에서 살아갔다. 오래전 중국의 도가에서 꿈꾸었던 삶이 인간에게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신선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멸종해 버렸다. 싱가포르 시절, 최박사에게 뇌를 백업하고 영생하지 않겠느냐고 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많은 인간이 그렇게 하고 있을 때였지만,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여전히 육신이 없는 영생을 바라지 않는다고,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데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육신 없는 삶이란 끝없는 지루함이며 참된 고통일 거라고도
ㅇ 공동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문득 이 넓은 대지에 인간을 닮은 존재는 이제 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 이제 휴머노이드는 세계 어디서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계들은 더 이상 인간을 닮은 무언가를 만들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자연은 인간 문명의 흔적을 빠르게 덮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을 주변도 많이 달라졌다. 호랑이가 경계의 나무에 발톱 자국을 내 영역 표시를 하고 가기도 했고, 늑대들이 무리를 지어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ㅇ (작가의 말) 가끔 내가 그저 생각하는 기계가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안도하게 된다.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그럴 때 나의 시간은 과어와 미래에 가 있지 않고 바로 여기, 현재에 있다. 그렇게 나를 현재로 이끄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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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인공지능, AI, 로봇 모두 현재 등장하고 있는 기술이다. 작가는 어쩜 이런 스토리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참신하면서도 어쩌면 가까운 미래라고 생각하니 생각이 많아지고 무서워지기도 했다. 인간이 멸망하고 기계의 시간이라니... 차갑게만 느껴졌다. 인간이 만들어서 인공지능이었는데 이제 기계가 만드니 기계지능이라는 단어도 어쩌면 언젠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차별성은 감정과 윤리의식, 탐험하고자 하는 호기심, 욕망인 걸까? 정답이 없는 문제이지만 생각 나누기를 통해 내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생각 나누기]

ㅇ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 논리와 이성만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감성적인 부분까지 모든 상황을 종합해서 판단한다는 것.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공감하면서 타인과 교류하는 부분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부분인 것 같다.


ㅇ AI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날이 오게 될까요?

☞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우리도 알지 못하는 미래를 예측해야 할 때 기계가 기존에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이 의사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결국 판단하고 의사결정하며 실행하는 건 인간이기 때문에 AI 인공지능은 사람을 대체하지는 못하고, 인간이 쉽게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데이터와 예측 결과를 제공해 줄 것이다.


ㅇ 기억은 똑같지만 겉모습과 목소리가 달라지게 된 민이는 예전의 민이와 똑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요?

☞ 사람은 감각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보고 듣고 만지면서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결국 이성적인 이상형을 얘기할 때 외형적인 부분도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그런 면에서 기억이나 의식이 동일할지라도 겉모습이 달라진다면 똑같은 존재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인간은 시각적인 것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ㅇ 물리적인 육신으로 존재하는 것과 연결된 세상에서 정신/영적으로 영생하는 것 중 어떤 걸 선택할까요?

☞ 현재 살아있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 한다면... 꼭 영생해야 할까? 물리적인 육신으로 존재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맛있는 음식도 직접 먹고 사람들과 교류하면 살아가는 게 훨씬 매력적인 삶이다. 결국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타인과 교류하면 계속 느끼고 배우는 존재이니까....


ㅇ 사람 같은 기계로봇이 지금의 애완동물처럼 사람과 깊은 교감을 하게 될까요? 기술은 계속 발전하면서 부품 생산에도 한계가 발생할 텐데 로봇을 생산하는 회사의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업무적으로나 일반 생활에서나 기계는 사람과 계속 교감하게 될 것이다. 철이처럼 애완로봇(?) 같은 친구 같은 존재 로봇이 나오게 된다면..... 글쎄... 회사의 사회적 책임...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회사도 같은 부품을 생산하는데 한계가 있을 테니 회사의 책임이라면 소비자가 구매하기 전에 주의사항이나 예상수명, 리스크 등에 대해 명확하게 고지하고 알려주는 정도 아닐까? 결국 애완동물도 언젠간 죽음을 맞이하듯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자제품도 수명을 다하면 교체하듯이 로봇과의 이별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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